도로시와 친구들이 찾아 헤맨 마법사는 실은 쩔쩔매는 노인이었습니다. 강력한 존재인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순간, 진짜 힘은 이미 자신들에게 있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결국, 허수아비에게 지혜를, 양철 나무꾼에게 마음을, 사자에게 용기를 ‘수여’했지만, 그건 원래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도 이 이야기와 닮아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강고한 지배권 구조가 존재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실체는 허약한 지분율 위에 법과 제도의 방패를 두른 허상에 가깝습니다. 지배주주 개인의 지분율은 평균 1.6%, 일가를 다 합쳐도 3.5%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누군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해줬기 때문입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법원의 판결들. 이 모든 과정은 단지 재벌이나 사법부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먹튀라며 외국계 투자자를 몰아냈던 언론과 여론, 그리고 그 침묵을 받아들인 시민들까지. 주식의 대다수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주인임을 자각하지 않았던 우리가 이 구조의 공범이었습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처럼 기업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곧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다시 ‘마법사’의 뒤에 숨길 것인가요, 아니면 드디어 주인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